인생 첫 종주
덕유산 육구종주
육구종주는 육십령 휴게소에서 출발해 덕유산 능선을 따라 구천동 주차장까지 가는 30km가 넘는 산행이다.
종주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고 한다.
아무래도 장거리 산행이기도 하고, 처음하는 종주라 긴장이 많이 됐던게 사실이지만
군생활 시절 40km 산악행군을 몇 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 가능하겠다 싶어
22년 6월 12일 8명의 맴버들과 함께 산행을 시작했다.
네비 입력지 : 육십령 휴게소
코스 :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산-삿갓봉-삿갓재 대피소-무룡산-동엽령-덕유산 향적봉(100대명산 인증지)-구천동 주차장
산행거리 : 33km
산행시간 : 휴식시간 포함 16시간, 운동시간 13시간 13분
운동열량 : 4,285KCAL (애플워치 기준)
난이도 : 5 / 5
일단 준비물부터 소개하자면
- 산행용품 : 등산가방(38L), 스틱, 페이스쉴드, 헤어밴드, 기능성 수건, 팔토시, 여분 양말, 코팅장갑, 손전등, 여분 티, 반바지, 바람막이
- 먹거리 : 누룽지 뽀글이, 육포, 초코바, 사탕
- 음료 : 파워에이드 500mlx2, 얼음물x2
- 기타 : 보조배터리 20000ma, 선크림, 물티슈, 휴대용 휴지, 국립공원 스템프투어 수첩, 현금 조금, 쓰레기와 젖은 의류 담을 비닐봉투2개
저렇게 보면 먹거리가 좀 부족해 보이지만 사실 중간중간 엄청난 식사를 하고 종주끝난뒤 체중을 재보니 오히려 살이 쪄있었다..
다이어트는 역시 먹는 게 반
새벽 두 시 육십령 휴게소
우리 팀 말고는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인다.
조금 으스스한 느낌도 들고 날씨도 좀 서늘했다.
휴게소 앞 터널을 지나 좌측으로 꺾으면 할미봉으로 들어가는 초입길이 나온다.
초입부터 알바를 했으나 그 후로는 길을 잘 찾아갔었다.
그나저나 느낌있네 이사진
약 50분정도 올라가면 처음 만나는 봉우리 할미봉
저녁을 부실하게 먹어서 그런지 너무 배가 고파서
여성 멤버가 손수 싸온 김밥을 여기서 흡입했다. (먹거리 1번)
다음 봉우리인 서봉에서 일출을 보려 했지만 도착 전 아쉽게 동이 트고 있었다.
종전 설악산 산행 때 일출 보려 무리한 기억이 떠올라(엄마생각남) 그냥 천천히 가기로 했다.
두 번째 봉우리인 서봉
이때가 오전 5시 32분, 산행 시작 2시간 반 정도 됐을 때다.
구름이 많아서 뷰는 뭐 별 볼 일 없었고
얼굴은 무슨 벌써 종주 다 뛴듯하다
지독한 물안개를 뚫고 지나가는 맴버들
지나가다 마주친 헬기패드에서 잠깐 재정비중
다음 봉우리인 남덕유산을 향한다
오전 6시 30분
종주 중 가장 이쁜 광경을 보여줬던 남덕유산
해가 뜨며 가라앉은 안개와
능선을 넘어 흐르는 운해가 정말 기가 막힌 풍광을 연출했다
다들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 찍기 바빴다
나도 인생 점프샷 한 장 건지고
축구선출 맴버도 맛나게 점프!
선생님 팅커벨이세요....?
내 폰 이때 열일했다.
초상권 문제없는 맴버사진 몇장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날이 개면서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담긴 어느 시점
저 사악한 길을 지나왔다.
삿갓봉은 이동경로 중 약 10분 정도 다시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는 길이라
올라가야 하는 길목에서 체력이 많이 방전된 상태라 들릴까 말까 고민을 조금 했었지만
여덟명 중 네명만 다녀오기로 했다.
오전 8:41
1주일 전에 먼저 종주를 뛴 팀 말로 삿갓봉이 공사중이라 정상석이 내팽개쳐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다행히 우리가 올랐을 때는 정상이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했음 안 찍고 왔음 아쉬울뻔했다.
3시쯤 김밥 먹고 음료랑 주전부리만 먹어서 그런가 너무 배고프고 힘든 시점이라
후다닥 사진 찍고 다시 종주 길목으로 하산
오전 9시, 7시간 만에 삿갓재 대피소에 도착
이때부터 엄청난 먹방을 시작
사실 이 종주의 시작은 축구선출(이하 선출이라 명명)친구가 약 두 달 전쯤에 모악산 산행에서
"형님, 덕유산 종주 들어보셨나요? 거기 진짜 좋다던데, 제가 삼겹살 구워드릴 테니까 같이 가시죠"
라고 하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아서 참석하게 됐는데, 진짜 대피소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먹거리 2번)
세상에,
이건 미친 맛이었다.
상상이 현실이 된 순간
산행 6시간만에 돼지기름이 무슨 맛인지 뭐 말해뭐해
이 친구 정말 도른게
쌈이랑 갖가지 채소랑 소금 쌈장 파절이까지 다 챙겨 온 무시무시한 친구이다.
키는 작지만 배낭에 버너랑 냄비랑 다 챙겨 와서 진짜
고생을 너무 많이 했지만 그만큼 다른 맴버들은 호강 제대로 했다.
비하인드로 코카콜라를 삿갓재 오는 길에 떨어뜨려 삼겹에 콜라를 못 먹을 뻔했지만
나의 선견지명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출발전에 이상하게 콜라를 챙기고 싶어서 한병 챙긴 걸로
8명이 나눠마시게 됐다.
고기 먹고 후식은 역시 라면에 김밥 (먹거리 3번)
정말 완벽한 식사 그 자체
지금 쫄쫄 굶고 포스팅 중인데 침 고이네,,
마무리 버거킹 와퍼(먹거리 4번)
남덕유산 하산길 휴식터에서 배고픈 사람은 먼저 먹었는데
나는 라면 먹고 햄버거까지 다 먹어 치워 버렸다.
이 정도면 등산이 목적인지 먹방이 목적인지 정체성에 혼란오는 정도
너무 배고프고 힘들었다가 너무 배불러서 힘들어지는
극악 난이도의 산행(?!)
저 코랄빛 네일아트 시강 장난없구만(대청봉 일출산행 1등의 손)
잘 먹고 배부른 상태에서 단체샷 한방
대피소 관리소장님이 정말 너무너무 친절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온 고생이 60프로고, 나머지가 40프로 남았다고 이야기해주셔서
배부르고 체력까지 소진했던 상태에서 남은 구간에 대한 걱정이 조금 줄어들었었다.
실제로 삿갓재 대피소 이후에는 그렇다 할 경사도 많이 없었고 이 전보다는 상당히 할만했지만
저질체력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약 한 시간 정도 식사와 휴식을 하고 오전 10:15 다시 출발
다음 봉우리인 무룡산으로 가기 전 데크길
출발한 지 30분 정도만에 과도한 나트륨과 영양소 섭취로 소화에 장애를 겪고 있는 상태라
표정들이 다들 하나같이 어둡다
나도 어지러운 느낌이라 현란한 팔토시 한 친구가 준 포도당을 하나 먹었다.
무룡산 도착 (오전 11:08)
여기도 백두대간 인증 지라 인증샷만 남기고
그렇다 할 뷰도 없어서 빠르게 이동
열심히 걸어 동엽령 응급구급함 인 증지 도착(오후 12:42)
이때부터 다리가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굉장히 피로감이 몰려오고 걷기가 힘들어짐
파워젤을 먹으니 한 30분 뒤부터 이상한 기운이 솟아나는 것을 경험
뿌리는 파스도 허벅지와 무릎에 엄청 뿌리며 아이템과 약빨로 버티기 모드로 전환
능선 따라 데크길이 생각보다 잘 나있는 편이다.
뻥뷰 보며 점점 생각이 없어지는 중
마지막 봉우리인 향적봉으로 가는 길
사진으로 보이는 꼭대기가 향적봉이라 생각했건만
뭐 언제나 그랬듯
예상은 빗나갔고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굉장히 속은 느낌이 들어 허탈함이 극으로 치솟았다.
멤버 중 한 명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는 향적봉까지 쉬지 않고 된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향적봉 도착 30분 전
사고 회로가 사라지고 다리가 안 올라가기 시작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향적봉 0.1km 앞 향적봉 대피소
이곳에서 물을 사려고 했는데, 대피소에 사람이 없어서 물 보급이 중단됐다.
급한 마음에 국립공원 관리소로 전화까지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제 체력도 빠지고 물 보급도 안 되는 상황에서 끝까지 가야 한다.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인 향적봉 도착 (오후 2:56)
이때 정상에 계신 등산객분들이 다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고, 고생했다고 먼저 얘기해주시는 걸로 보아
우리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정상인 게 이상한 거지
도착과 동시에 엄청난 쾌감과 다 해냈다는 생각에 취해 신이 나 있었다.
사실 설천봉과 칠봉을 통해 구천동으로 가야 하지만 신이 난 기분과는 반대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 다리의 안녕과
앞으로의 또 다른 산행을 위해 무리하지 않고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타협하고 하산을 했다.
대피소에서 물 보급을 못한 것도 한몫했고..
향적봉에서 다 끝난 줄 알았던 종주는 하산길이 무슨 세 시간이냐...
다리 질질 끌면서 생존본능으로 구천동 탐방지원센터에 도착
고생고생 생고생하며 어쩌든 저쩌든 완주
이때 같이 고생한 맴버들은 거의 전우가 됐고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특별한 경험인 건 확실하다.
비하인드 1. 이날 집에 와서 맥주 한 캔, 소주 반 병에 기절해 다음날 자전거로 출근했다.
그다음 날 자전거 탄 거 뼈저리게 후회함
근육통은 역시 3일 차부터, 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비하인드 2. 이때 종주에 종자도 입 밖으로 안 꺼낸다던 이 사람 중 몇몇은
얼마 전 한여름에 지리산 화대종주를 씹어 드시고 설악 대종주를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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